80년 초 석유파동 이후 잠들어 있었던 인플레이션이 약 40년 만에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22년 말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9%를 훌쩍 넘기면서, 미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욱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강력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함께 요즘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인플레이션이란?
물가 즉 물건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하죠.
물건의 가격은 화폐 대비 물건의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물건의 가격이 오른다는 말은 물건의 가치 대비 화폐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말도 됩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란 물건의 가치가 오르거나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겠죠.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특별한 현상인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먼 옛날 짜장면 한 그릇에 100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한 그릇에 8,000원 정도 됩니다. 물가로 치면 80배나 비싸졌지만, 그 만큼 통화량 증가(=화폐가치 하락)와 함께 찾아오는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연스러운 물가의 상승에 비해 특히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한 증가폭(%)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나 미국의 중앙은행인 미연준이 타겟으로 잡고 있는 증가폭은 연 2% 수준입니다. 이 수준을 넘어가면 기준금리를 올리던가 지급준비율을 올리면서 물가 수준을 잡으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 하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자신이 찍어낸 화폐의 가치가 급격하게 훼손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미연준도 인플레이션 타겟을 2%로 잡고 금리를 올리고 있죠?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확인하지?
인플레이션은 보통 소비자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로 측정합니다. 가구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한 지수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년 대비 변화율로 측정하는데, 미국의 경우 한 달에 한번씩 발표합니다.
위 그래프는 미국의 소바자물가지수 상승률인데, 지난 6월 9.1%를 정점으로 찍고 그 이후 서서히 내려오는 모습입니다. 80년대 석유파동 이후 높아도 5%선을 유지했던 것에 비해 갑자기 높은 폭으로 올라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인플레이션이 눈을 뜬 셈이죠.
인플레이션을 견제하는 이유
인플레이션이 물가의 상승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인플레이션을 견제하는 이유는 뭘까요?
첫째, 빈부 격차가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땅이나 건물, 재고 상품과 같은 실물의 가치는 물가와 함께 상승하는 경향이 있지만, 화폐 가치는 하락합니다. 주택이나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서민들이나 봉급 생활자들은 화폐 가치 하락으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게 됩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빈부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나라도 작년에 벼락거지라는 단어가 많이 돌았죠? 정말 미친듯이 오르는 아파트 값에 무주택자가 망연자실해 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내가 봉급을 받아봤자 하루가 다르게 폭락하는 화폐 가치 때문에 물건을 살 여력이 없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시스템이 붕괴될 겁니다.
둘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아껴 저축하기보다는 토지나 기존에 만들어진 건물 구입 등의 비생산적인 투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근로의욕 저하나 생산을 위한 투자활동의 위축을 초래하여 결국 국민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게 됩니다.
부동산이 오르고, 주식이 오르고, 코인이 오르면 사람들은 퇴사를 합니다. 충분히 많이 벌었고, 또! 투자만으로 충분히 많이 벌꺼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셋째, 국제수지의 악화를 가져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외국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국 상품의 가격이 비싸집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싼 수입품을 더 많이 찾게 되어 수입이 증가하죠.
반면, 국내 물가의 상승은 수출품의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외국 소비자의 수요가 감소하여 수출이 줄어들구요. 결국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은 증가함으로써 국제 수지가 악화됩니다.
인플레이션의 일반적인 원인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인데요.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상승합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 : 수요측면
먼저 수요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 pull inflation)은 경기가 좋을 때 나타납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기는 확장과 수축의 사이클을 오가곤 하는데, 수요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은 경기 확장의 정점 부근에서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
가깝게는 2018년이 그랬고, 멀게는 2007년의 인플레이션이 그랬습니다. 주식시장도 통상 경기가 좋을 때 호황이니, 수요발 인플레이션은 주가지수의 정점 부근에서 나타납니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KOSPI는 2007년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사상 최초로 2000포인트대에 도달했고, 2018년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당시 기준 사상 최고치인 2600포인트대에 올라섰습니다.
수요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은 통제하기도 쉽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통상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을 씁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아무래도 씀씀이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를 반영해 물가상승률도 둔화되곤 합니다.
인플레이션 원인 : 공급측면
경제의 공급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겨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이라고도 부르는데, 수요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보다 복잡합니다. 인플레이션을 해소하는 것도 어렵구요.
무엇보다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 우리의 경제적 직관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은 진보하고, 생산은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희소성이 있는 사치재는 예외로 볼 수 있지만, 물가지수 산정에 사치성 품목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그래서 공산품보다는 통제하기 힘든 원자재 시장의 교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산물이 대표적입니다. 기후에 많이 좌우되는 농산물의 작황은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입니다.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빅 스텝이다, 자이언트 스텝이다 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금리인상으로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근 강력한 인플레이션의 원인
근 40년동안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수요측 요인이나 공급측 요인이 없었을까요? 많았습니다. 강력한 성장으로 수요가 폭발한 적도 있었고,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 작황이 나빠졌던 적도 있습니다. 원유 공급 문제가 대두된 것은 한 두번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 동안 잠잠했던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나타난 걸 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멀리 돌아왔습니다만, 이제 진짜 하려고 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네요.
미친듯한 돈 풀기
40년만에 찾아온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일등 공신을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무시무시한 수준의 돈풀기 때문입니다.
미국만해도 중앙은행인 미연준에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구요. 게다가 행정부 역시 엄청난 수준의 부양책을 시행했습니다. 말 그대로 미친 수준인데요.
제가 전에 다룬 [미연준의 대차대조표]를 볼까요?
미연준의 대차대조표에서 따온 미연준의 자산 수준입니다. 자산이 늘어난다는 것은 쉽게 말해 미국채를 매입하고 현금 유동성을 늘렸다고 보면 됩니다.
주목할 지점은 돈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년 초의 상황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풀린 유동성에 비해 2020년 Covid-19때 풀린 유동성을 비교해 보시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규모에서 상대가 안되죠. 긴 기간에 걸쳐 4.8조 달러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하다가 갑자기 그 양을 8.8조 달러까지 늘렸습니다.
게다가 미연준의 통화정책에 더해 정부의 재정정책 또한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늘어난 돈의 규모는 정말 역대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 영국 등 주요국가 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썼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안생길 수가 없겠죠? 늘어난 돈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떨어졌으니까요. 통화가치가 떨어진 만큼 물건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돈을 꽂아주니 소비 욕구가 진작되어 수요가 늘어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야기한 공급망 교란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공급망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비용이 낮고 품질이 좋은 지역에서 각각 부품을 생산해 조달하는 것이죠.
어느 한 군데에서 부품 조달이 문제가 생긴다면 전체적인 공정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바로 이 국제적인 공급망을 교란시켰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공장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됩니다. 셧다운 인해 공장이 돌지 못하면서 부품 생산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한 전세계적인 조치로 인해 글로벌 물류시스템과 운송시스템이 마비가 되었죠.
최근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백신이 보급되고 감염됐던 사람들이 치유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23년에 들어 중국이 격리를 해제하면서 다시금 감염자가 폭발하고 있으니 완전한 회복을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이른 모습입니다.
그 밖의 이유들
악재는 겹쳐서 온다고 했나요?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인 도를 넘은 돈풀기와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에 겹쳐 다른 요인들이 또 있습니다. 그 밖의 이유라고 해서 쩌리라고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하나하나가 크거든요.
공급 측면의 요인 들인데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소모적인 기술 패권 전쟁으로 반도체 등 첨단제품과 소재산업에서 기존 공급망을 붕괴시켰습니다.
그리고 수입을 중단시키거나 관세를 쌓아 수입을 줄이면 비효율적인 다시말해 비싼 부품을 사용해야 하니 당연히 공급 물가가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3대 산유국이고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지대라 불리고 있죠. 전쟁으로 인행 원유와 농산물 공급이 어려워졌습니다.
코로나 발발했을 때 원유 선물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갔었습니다. 그 이후 어떤가요? 치솟는 유가를 보면서 내가 왜 원유에 투자안했을까 하시는 분들 많았겠죠?
마지막으로 임금의 상승입니다. 마지막에 언급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연준의 경기동향 보고서(베이지북)에 따르면 23년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인건비를 꼽은 만큼 만만치 않은 녀석입니다. 기사 하나를 인용할께요. [미 임금인상 25년만에 최고]
그럼 임금의 상승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자리 복귀 지연이 큰 이유일테구요. 관련해서 한번 셧다운으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진 상태에서 급하게 공장을 돌린다고 인원을 찾는 것 쉽지 않죠. 사람을 급하게 구하려면 임금을 올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임금 상승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제한적 양적완화로 인해 자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는데 사람들이 일하려고 할까요?
코인이나 주식으로 돈을 벌수 있으니 일하지 않으려고 하겠죠. 그리고 한번 올라간 임금은 내려가기 매우 어렵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 결론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간단히 쓰려고 하다가 엄청 긴 글이 됐습니다. 인플레이션 정의부터 일반적 원인 그리고 최근 인플레이션 원인까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가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겠죠. 인플레이션 발생 시 원자재나 물가연동채가 보통 좋은 대안이 되는데요.
다만 물가연동채도 Duration이 짧아야지 긴 걸 선택하면 오히려 낭패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물가연동채를 비롯 인플레이션 시기 투자 전략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성투하세요~